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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투고] 행복, 동전, 마법

특별 수록

by 대서 2020. 11. 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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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고등학생들에게는 학업의 종지부처럼 여겨지는 큰 시험을 치룬 후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올라오게 된 서울의 풍경은 고향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항상 만원인 아침 지하철부터 활기가 넘치는 저녁과 새벽이 되면 찾아오는 공허까지. 처음에는 스무 살의 패기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뭐든 열심히 하며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 한편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았던 것도 같다. 저녁거리를 환하게 비추던 가로등마저 그 빛을 잃을 때, 잔뜩 취한 채로 자취방에 돌아와 이유 없는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다. 모든 것들이 벅차기만 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정말 없던 병이라도 생길 것 같아 고향에 내려갔는데, 내 물건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날 더 외롭게 만들었다.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고향에도 속할 수 없고, 서울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고향에 내려간 날 새벽에 새까매진 하늘을 보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던 것은 아직까지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저기요. 주문한 음료가 아직 안 나왔는데요.”

  “, 죄송합니다, 손님. 금방 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아직까지도 안 만들었다는 얘기인가요?”

  “죄송합니다. 금방…….”

  “죄송하단 말이면 끝나요? 사장 나오라 그래!”

 언성을 높이는 손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손님에게 정말로 죄송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도 또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언제쯤 이 상황이 종료될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다가 얼마 후에는 그런 생각들마저도 사라지고서는 오늘 저녁에 별이 뜰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손님은 결국 삿대질과 함께 욕이란 욕은 전부 하고서 가게를 떠났다. 가게에 남은 손님들은 진상 손님이 나간 후에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보며 한참을 수군거렸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데, 그 손님은 애초에 주문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에는 왜 나한테 그러는 건지 원망도 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아메리카노 한 잔, 따뜻하게요.”

 초점 잃은 눈과 처진 눈매, 창백한 피부. 그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그는 어느 날 나타나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종류의 커피를 주문하고,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해도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커피가 다 식어가는 것도 모르는 듯, 그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그의 표정은 늘 같았지만, 어쩐지 공허해 보일 때가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이면 늘 안녕히 가세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는데, 그는 오직 그 말에만 반응했다.

  “감사합니다.”

 그가 자리를 뜬 이후에는 그 자리에 앉아도 보았다. 그가 늘 바라보는 풍경이 무엇이기에 그리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곳에는 몇 시간을 넋 놓고 볼 만큼 특별하달 건 없었다. 복잡한 도시의 모습,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렇게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라도 괜찮으니 한 모금 넘기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거구나. 그는 이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에 병적으로 달려들곤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음식은 살기 위해서 먹는 느낌이랄까. 맛을 음미하고자 음식을 먹은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이젠 음식의 모양을 한 덩어리를 입 안에 넣고 억지로 씹는 느낌만 남았다. 자취방 냉장고의 음식들은 거의 절반 이상이 유통기한을 넘겨 있었다. 따로 음식을 사는 수고를 덜고 싶어서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고, 다시 상한 음식을 먹고……. 바짝 하루만 아프면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졌으니,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영양실조입니다.”

 영양실조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은데……. 의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오른팔에 꽂힌 바늘을 통해 차가운 액체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좋은 기분은 아니네. 일하던 도중 빈혈 증상처럼 세상이 빙빙 돌더니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카페에서 쓰러진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누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같이 일하던 분? 그 분은 쓰러진 나를 보고 발만 굴렀을 것이다. 쓰러진 알바생을 위해 가게를 비울 순 없었을 테니까.

  “다이어트같은 거 하신다고 밥 거르시거나 하지 마시고요. 밥은 웬만하면 삼시세끼 챙겨 드시고요. 약 지어드릴 테니까 지금 맞고 계신 것만 다 맞고 퇴원하세요.”

 조금 우스웠다. 다이어트라니. 고작 생각해낸 게 다이어트라니.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처럼 웃어버릴까? 기분 나빠할까? 자신의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풀어놓을까?

  “좀 괜찮으세요?”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매번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주문하는 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이 왜 여기에 있어요?”

  “들어갔는데, 쓰러져 계셔서요.”

 그가 올 시간이었던 건가?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재빨리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감사 인사라니요. 그건 제가 드려야 하는 걸요.”

  “?” 나는 믿을 수 없는 말에 그에게 되물었다. “저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웃는 모습은 실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밥이라도 같이 한 끼 하시지 않을래요?”

 

*

 누군가와 함께하는 저녁이라 그랬는지 오랜만에 굉장히 맛있었던 저녁을 뒤로하고 그와 구불구불한 길을 함께 걸었다. 그는 나와 밥을 먹으며 지금까지의 일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낸 책들이 모두 독자로부터 외면을 받아 자신의 작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것이 슬럼프의 시작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글을 한 자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죽을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자신의 삶만 뒤처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카페에서 일어섰을 때,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하는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카페를 찾았고,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한 편 썼다고도 했다.

  “그게 그쪽이에요. 늘 제게 행복하라고 말해 준 카페 알바생.”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확실히 그의 인상은 변해 있었다. 훨씬 생기가 도는 얼굴에,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 그의 웃음은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별 일 하지도 않았는데, 칭찬 받은 기분이에요.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지금 되게 힘들어서요.”

  “왜 힘든데요?”

 그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왜 힘든지 모르겠는데 힘들어요. 그냥, 사는 게 좀 지쳐요.”

 그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무엇이냐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단지 옅게 미소를 띨 뿐이었다.

  “이게 뭐예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그에게 질문했다.

  “이건 마법의 동전이에요.”

  “마법의…… 동전?”

 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을 응시했다. 아무리 보아도 일반적인 100원짜리 동전이었다. 이순신이 그려진,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있는 100원짜리 동전. 나는 그래도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동전을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그러나 정말 별다를 게 없는 100원짜리 동전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그에게 물었다. “어떤 마법인데요?”

  “이 동전을 지니고 있으면 이 동전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제 행복해졌으니, 그쪽에게 줄게요.”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그에게 받은 동전을 꽉 쥐었다. 동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마법의 동전이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었는데, 괜스레 그의 말을 믿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나는 그가 준 동전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다. 동전을 쥔 손은 펴질 줄을 몰랐다.

  “오늘 밤하늘 정말 예쁘네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매번 새까맣기만 하던 하늘을 새하얀 별들이 수놓고 있었다.

 

 문득, 그리운 것이 있었다.

 

 

[대서 강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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