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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의 『아몬드』, 감정의 진정한 힘을 논하다

특별 수록

by 대서 2020. 11. 2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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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실험쥐에 관한 내용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편도체를 제거당한 쥐 실험이다. 편도체는 뇌 속에서 감정, 특히 공포를 처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편도체가 제거된 쥐는 고양이 앞에서 도망치긴커녕 고양이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두 번째는 쥐 공원 실험이다. 모르핀이 든 물과 그렇지 않은 물이 있는 비좁고 더러운 우리의 쥐는 모르핀이 든 물만 마시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어버린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는 쥐들이 좁은 우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약물에 중독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쥐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그때도 쥐들이 모르핀에 중독될까 호기심을 갖는다. 이 호기심에 착안하여 브루스 알렉산더는 넓은 우리에 장난감 공과 터널이 있는 쥐 공원을 만든다. 그리고 쥐들을 풀어 자유롭게 교류할 친구를 만들도록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쥐들은 모르핀이 든 물을 마시지 않았다.

『아몬드』 표지, 창비.

 

 『아몬드』는 첫 번째 실험쥐가 두 번째 실험쥐의 결과를 맞이하는 소설이다. 윤재는 날때부터 남들 보다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여느 아기들과 달리 웃지를 않았고 뜨거운 주전자에 화상을 입은 후에도 어김없이 손을 가져다 대는 아이였다. 의사들은 윤재의 병을 관찰하며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보길 원했지만 윤재의 엄마는 이를 거절한다. 윤재가 실험쥐 신세가 되는 게 아닌가. 병원을 나온 엄마는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상황 A에서는 감정표현 B를 연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감정은 일정값을 입력하면 정해진 결과가 산출돼야 하는 수학공식이 아니다. 게다가 윤재가 모든 경우의 수를 암기할 수도 없었다. 윤재의 엄마는 윤재가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괴물’, ‘사이코패스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비정상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평범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수가 생각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않으며 다수가 정해 놓은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똑같은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들은 군집을 이루어 포식자들의 공격을 예방한다. 모두가 같아지는 일은 생존에 유리하다. 알비노 동물이 무리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다름이 공동체 질서에 위시되고 포식자로부터 살아남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 색소를 타고 난 동물들에게 밀라닌 색소가 부족한 동물은 비정상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 국민들은 파병됐던 군인들이 귀화하는 일에 걱정이 앞섰다. 미군의 25%가 전시에서 마약 중독자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들이 미국에 돌아와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을 염려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의 80%가 마약을 끊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맞아주는 긍정적인 환경 속에서 극단적인 쾌락을 좇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미국 사회 가 공동체 질서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마약 중독자들을 사회 구성원에서 배제하는 조취를 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핀이 든 물만 마시다 죽어간 쥐처럼 자기 파멸의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타인을 포용하는 힘이야말로 감정의 진정한 힘이다

 무리에서 쫓겨난 알비노 동물의 위험 요소는 그렇게 태어난 자신도 아니고 천적 동물도 아닌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동족들이다. 윤재는 자신을 사회 부적응자로 바라보는 소위 정상인들을 이렇게 고찰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218p)”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는 기존 틀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틀에서 벗어나는 비정상인들의 존재는 외면한 채 다시 편안한 삶 속으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다. 윤재는 감정을 타인을 위한 행동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감정은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끌어안는 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정의 힘을 사용하기를 매번 주저하는 것이다.

 이성은 차이를 구분하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가치 순위를 매긴다.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이성은 덜 중요한 가치들은 도태된 비정상으로 여기고 차별을 종용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게 달려있다. 감정의 실효는 하루 지나면 사라질 이슬 같은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손을 맞잡아 주는 데에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감정 속에서 인간의 유토피아가 신축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 인간의 공원을 꿈꿔본다.

 

 

[대서 홍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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