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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쉘과 세인트 주디, 이름 너머의 그들

문화

by 대서 2020. 10. 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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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 송고

금발미녀와 성녀, 피해자와 변호사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7월 한국에서 비슷한 듯 다른 두 영화가 개봉되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 선언><세인트 주디>. 두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여성들이 부당함에 맞선 이야기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 선언>

 2016년 미디어 산업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 제기되었다. 미국의 보수 언론 폭스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를 상대로 앵커 그레천 칼슨이 소송을 벌였다. 회장이 대화 중 성적인 발언과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으며, 그의 성적 접근을 거부하자 보복과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칼슨의 소송 이후 폭로가 이어졌고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도 목소리를 더했다. 미투운동의 도화선이었다.

 영화는 당시의 사건을 그레첸 칼슨(니콜 키드먼),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카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카일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허구의 인물로 다른 여성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이야기에 미처 다 담지 못한 현실을 조명한다. 각본을 쓴 랜돌프는 가해자에게 굴복하는 일이 인생에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려 했고, 실존 인물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 허구적인 인물을 만들었다고 했다. 에일스(존 리스고)의 집무실에서 카일라가 성희롱에 시달리는 장면은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치마를 올려보라는 에일스, 위력에 짓눌려 성희롱 당하는 카일라, 끔찍한 장면을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는 관객. 카메라는 가해자의 관음적 시선과 피해자의 일그러진 얼굴, 부들거리는 몸짓을 모두 담아낸다. 관객은 피해자에게 이입해 숨막힘, 불쾌감, 수치심, 모욕감을 느끼고 피해자 입장에서 위계에 의한 성희롱을 직시하게 된다.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no’를 외칠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 한 인물은 칼슨의 고소에 대해 퇴사하고 소송을 걸었어야지. 잘리니까 소송한 거잖아요. (성폭력 직후엔) 왜 불평 안 한 거야?”라고 반응한다. 왜 즉시 신고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야기를 꺼내느냐. 피해자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말이든, 피해자의 불순할지도 모르는 의도를 의심하는 말이든 이는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피해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스스로를 검열해야만 한다. 본인이 겪은 모욕감을 상기하며 불쾌해 해도 괜찮은지’, ‘혹시 자신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는지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왜 바로 거절 의사를 표하지 못했는지무력감에 빠지고 자책하게 된다.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극중 메긴 켈리가 말한다. “월급 주는 사람을 변태라고 말해봐.” 위계에 의한 성희롱은 곧바로 대응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밥벌이 수단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함부로 항의했다가 잃게 될 것들이 분명하다. 직장에서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신체 노출을 요구하는 상사 앞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부당함을 따지려 들었다가는 모가지가 잘려나간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메긴 켈리는 피해자들과 함께한 영화를 관람한 직후 대담을 나눈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했다. 메긴 켈리는 에일스에게 성추행 당했을 당시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딱 달라붙는 혹은 기장이 짧은 옷차림이 아니었다고. ‘변호사처럼’, ‘남자처럼입고 있었다고 말하며 피해자의 옷차림이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돌아보자. 그간(그리고 끔직하지만 여전히)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말, 행동, 행실, 옷차림에 지나치게 관심 쏟지 않았는지. 피해자가 갖추어야 할 양식이 따로 있어서 그랬는지. 그 피해자다움을 정말 알아야겠는지.

 

인구 절반인 여성의 권리 <세인트 주디>

 이민 변호사 주디 우드(미셸 모나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아세파 아슈와리(림 루바니)의 변호를 맡게 된다. 아세파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다. 학생들, 다른 선생님과 함께 당당히 길을 걷던 중 남자 외지인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맞고(‘남자 없이 어딜 돌아다니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탈레반에게 체포되었다. 그 후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 요청을 했다. 본국으로 추방되면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에게 명예살인당할 게 분명했다. 아세파를 신고한 당사자는 그녀의 아버지였고 사유는 신성모독이었다.

 한편 당시 미국의 망명법은 여성을 약자로 보지 않았다. 이 제도는 인종, 종교, 사회 단체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정치적으로 박해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지만 아세파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은 보호받을 수 없었다. 성차별에 의한 위협이 정치적 견해에 따른 박해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재판을 거치면서 아세파는 탈레반에게 체포를 당한 후 강간을 당했으며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알렸지만 망명은 승인되지 않았다. 사건은 제9순회 항소법원까지 가게 된다. 판사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 어찌하여 약자인가묻는다. 그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3분의 2는 자신의 생각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는다. 주디는 여성이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임을 밝히며 이전 판례를 뒤집는다.

 프랑스 혁명 시기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는 말을 남겼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인구의 절반의 움직임이 나머지 인구 절반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

 “이긴다고 해도 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당신의 기적만을 바랄 테니까요. 당신이 모두 다 구할 수는 없어요그녀의 전 상사가 조언했다. “세인트 주디가정을 등한시하면서까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주디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전 남편이 비아냥댔다. 그들에게 그녀는 시도는 해봐야지”, “그 사람들에겐 나밖에 없어. 한 명을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은 모두를 위해 싸우는 거야.”라고 답한다. 실제 인물 주디 역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끔 의뢰인들이 와서 당신이 우리를 구원해주길 바라요라고 말해요. 그러면 난 그들에게 난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 나는 신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당신의 변호사입니다.’라고 말한답니다.”("Sometimes clients come in and they say, 'Oh, we want you to save us.' And I tell them, 'I can't save you, I'm not God, I'm just your lawyer.'")

 


 

 밤쉘(Bombshell)에는 몹시 충격적인 일, 섹시한 금발미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주요 등장인물 세 명 모두 금발이었고 이들은 폭탄을 터뜨려 세상은 충격을 받았다. 그 폭탄은 생각보다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성이 겪는 성폭력이든 권력자의 위계 남용이든 두 가지가 중첩된 것이든 밤쉘(폭탄 선언)은 밤쉘(금발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주디는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사람이었다. 의뢰인 한 사람을 위해 법정에서 싸우지만 그 일의 파급력을 알았다. 자신의 헌신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찬하지 않았다. 세인트 주디가 아닌 변호사 주디의 삶을 살았다.

 밤쉘과 세인트 주디, 누구의 시선으로 비추어졌든 누구의 목소리로 불렸든 그들은 그 이름에 갇히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불합리와 부당함에 맞섰다. 이들의 용기는 정말 나아진 세상으로 향했다.

 

 

[대서 전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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