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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문화적 수용성

문화

by 대서 2020. 9. 1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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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가족부는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을 추진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배우고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전국 10개 초등학교에 나다움어린이책 여성가족부 추천도서’ 200여 종과 교사용 독서교육 지도안, 어린이용 책놀이 세트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826나다움 어린이책’ 7(총 10)에 대해서 회수 결정을 내렸다. “일부 도서가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인 데 따라 사업을 함께 추진해온 기업과 협의 끝에 해당 도서들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수된 7종의 책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책 표지. 출판사 '담푸스' 제공.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선정된 책 몇 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에서 성교 자체를 '재미있는 일', ‘신나고 멋진 일', '하고 싶어지거든' 등으로 표현했다며 초등생의 조기 성애화 우려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책의 일러스트가 보기가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 의원은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이라는 책에 담긴 남자 둘이나 여자 둘이, 아주 비슷한 사람들이 사랑할 수도 있어라는 글귀와 일러스트를 문제 삼으며 동성애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 성교육을 당연히 해야하지만 성소수자 취향과 결정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이렇게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조장하고 미화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욱 국회의원 페이스북 캡처. 일러스트 원본에 모자이크를 하여 게시했다.

 김 의원의 이와 같은 지적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올바른 성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에 불붙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6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다양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포괄적 성교육은 국가의 책무라며 논평을 냈다. “‘금욕을 바탕으로 한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성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성교육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기존의 성교육과는 다른 포괄적 교육을 원한다.”, “‘동성애로 대표되는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은 아동 청소년들에게 조장, 미화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삶과 닿아있다.” 결국 26일 저녁 여성가족부가 회수 결정을 내리자 연합은 27일 여성가족부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일부 혐오세력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며 규탄했다. “‘문화적 수용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실질적인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김병욱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포항여성회는 전국의 65개 단체와 함께 포항남울릉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은 시대착오적인 성개념을 즉각 철회하고, 여성가족부는 나다움 어린이책사업을 소신있게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반대로 바른인권여성연합은 31일 김병욱 의원의 문제 제기를 적극 지지하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여가부의 나다움 성교육 도서와 급진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성교육을 폐기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급진 페미니즘은 성도덕의 붕괴와 가족의 붕괴를 불러왔고 나아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전 인류의 위기를 초래했고, 젠더 이데올로기는 생물학적 요소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차이를 성별 고정관념으로 치부했다며, “그들이(여성가족부) 말하는 다양성, 공존, 개성존중은 동성 성행위와 트렌스젠더리즘 등 아직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적 성개념까지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다 수용, 교육하려는 일종의 언어적 포장일 뿐이라며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사업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논란이 된 책에 대해서는 정서와 가치관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굳이 성행위 장면과 출산 장면을 노출시키는 것은 연령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고, 동성애를 정상적인 것으로 교육시키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수천 년 동안 엄연히 존재해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질서를 주장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나다움 어린이책회수 조처 이유를 질문받자 많은 대화를 통해서 사회적 동의를 구성해가고자 했는데, 학부모단체 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로 밝혀짐에 따라 사회적 동의를 구성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어 회수를 결정하게 됐다고 답했다. “정부가 주관한 사업이면 가치논쟁을 조금 해볼 수 있었는데, 정부 예산을 쓴 사업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공헌사업으로 파트너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나다움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의 사업이 사회적 갈등요인으로 부각되는 것은 굉장히 원하지 않는 결과였다고 밝혔다.


 성기를 노골적으로묘사하고 성관계를 좋은 것으로 표현하여 논란이 된 책은 덴마크에서 1971년 출판되어 이듬해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았다. 전 세계로 번역출판되었고 '덴마크의 지난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국제적인 명성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 수용성이란 용어를 내세우며 기존의 성교육을 일단 방어하고 보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을 해야 한다. 해당 그림책이 구체적으로 왜 부적절한 성교육 교재인가? 아이들이 보는 교육용 그림책에 성기를 사실대로 그리면 노골적인 걸까? 초등생에게 성관계의 과정을 교육하기에는 이른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나이대별로 성에 대해 단계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얼마나 지원하는가? 동성애자는 미화의 대상으로 불려도 괜찮은가? 이성애만이 견고한 정상인가? (자연스럽다고 표현하는) 생물학적 특징만으로 한 인간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가? 동성애자를 조장하는 사회가 아닌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를 우려해야 하지 않은가?

 필요한 성 지식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에둘러 가는 분위기 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음지로 가 잘못된 성 지식을 습득한다. 어른의 권위적인 시각으로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교육은 쓸모없다.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행동할 줄 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존중해야 하고 호기심이 어긋난 방향을 향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알려주는성교육이 헛된 호기심을 심어줄까 걱정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언젠가 갖게 될 호기심이자 알아야 할내용이다. 아이들이 가지는 호기심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싹을 자르거나 때가 되면 절로 알게 된다는 교육자의 수동적인 태도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나 거북함을 심어줄 수 있다.

 ‘문화적 수용성을 따지니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들어 유보한다.’ 시기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찾아오지 않으며, 유보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무기징역 선고이다. ‘수용성만큼이나 문화에 집중해야 한다. 당연히 누리고 있는 우리 문화의 맹점은 무엇인가. 다른 목소리는 잡음일 뿐인가.

 

 

[대서 전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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