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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로 전진 – 영화 ‘메기’

특별 수록

by 대서 2020. 9. 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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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구교환을 아는가? 얼마 전 영화 반도에 서상훈(서대위) 역으로 출연한 배우 말이다. 반도에서 강동원 배우만큼이나 눈에 띈다고 생각해서 영화관을 나온 후 찾아본 결과, 이옥섭 감독의 메기라는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후기를 보니 구교환 배우는 독립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하더라. 사실 독립 영화는 본 적이 별로 없어 진입 장벽을 좀 느끼는 편이었는데, 배우의 매력에 푹 빠진 상태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리아 사랑병원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기 위해 지어진 성당을 갈아엎고 차린 개인 병원이다. 성당이라 함은 종교 활동을 하는 공간, 즉 하나님을 믿는공간이다. 그러나 병원 설립자는 성당의 의의를 저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좇는 개인 병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의 이름은 천주교의 의미가 가득한 마리아 사랑병원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아이러니함은 비단 병원 설립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 영화의 등장인물 세 명을 모두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마리아 사랑병원의 간호사인 윤영, 성관계 중에 찍힌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이 병원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유일하게 웃지 못한다. 자신과 남자친구의 사진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못 다닐 것 같아 남자친구와 사이좋게 사직서까지 썼는데, 병원 부원장이 먼저 그만두라고 하자 병원에 계속 다니겠다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생한다. 타의로 실직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사진일 것이라는 믿음을 바로 저버린 것이다.

 자신 안의 믿음을 저버린 윤영은 웃기게도 부원장 경진에게 믿음 교육을 하겠다고 나선다. 경진은 살인 미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어 살인 미수자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죽을 뻔한 남자아이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사실이라고 여긴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는 자꾸 싱크홀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싱크홀은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에게 있어서는 희소식이다. 백수로 살고 있던 와중에 싱크홀을 메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하던 와중 성원은 윤영과 맞춘 커플링을 잃어버린다. 은도 아니고 무려 백금인 커플링을. 망연자실하고 있던 성원은 며칠 후에 자신의 동료가 발가락에 백금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의 커플링을 훔쳐 끼운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성원은 동료의 하루 일당을 훔친 후 백금 반지와 맞바꾸지만, 손가락에 끼워 본 후 그것이 자신의 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윤영은 성원의 전 여자친구인 지연 씨를 만난다. 윤영은 그녀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데, 성원이 자신을 폭행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윤영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한다. 이를 경진에게 털어놓자, 경진은 의외로 간단명료한 답을 내놓는다. 나라면 성원 씨한테 물어볼 것 같은데.

 그래서 윤영은 성원을 다시 찾아가서 물어본다.

여자 때린 적 있어?

 그러자 성원은 대답한다.

, 전 여친 때린 적 있어.

 여기서 말하는 전 여친이 지연 씨인지, 윤영 씨인지는 듣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 메기가 튀어오르고, 성원이 서 있던 곳에는 싱크홀이 생긴다. 성원은 그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버리고 윤영은 그를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며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초반에 윤영이 옷을 가지고 길을 가다가 싱크홀을 목격한 장면과 연결된다. 윤영은 그 싱크홀에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다라고 쓰인 쪽지를 버린다.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윤영이 가진 성원에 대한 의심이라는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이전의 에피소드들과는 다르게 믿음과 사실은 일치했고, 윤영은 더 이상 구덩이를 더 파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성원이라는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윤영이 그 쪽지를 싱크홀에 접어서 버렸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 해석할 수도 있다. ‘구덩이가 성원에 대한 의심이라면,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것은 성원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영은 이 쪽지를 싱크홀에 버렸다. 그리고 나오는 나레이션. ‘간호사는 생각했습니다. 생각하지 않기로’. 성원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 그랬는지는 이제 윤영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 영화의 서술자는 특이하게도 병원에서 키우는 메기이다. 왜일까? 이 영화의 모든 것들에는 전조 증상이 없다. 민망한 엑스레이 사진이 찍힐 때에도, 갑자기 모든 직원들이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을 때에도, 싱크홀이 생겼을 때에도, 찌질하지만 귀여운 남자친구가 사실은 데이트 폭력범이었을 때에도. 하지만 어항에서 메기를 키우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했지만 실재하고 있는 일들은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많다. 사람의 믿음은 가변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 전조 증상들은 사람이 아닌 오직 메기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서 장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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