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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키운 성장소설 – 잠옷을 입으렴

특별 수록

by 대서 2020. 9. 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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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유행한 뒤 한동안 추억을 되새기는 콘텐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90년대 아이콘 가수들로 구성된 무대, 일명 ‘토토가’를 기획해 큰 호응을 얻었었고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은 테마부터가 “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를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이라 소개되어 있다. 향수병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추억팔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는 ‘웰빙’이 삶의 신조였던 때를 지나 이제는 ‘소확행’, ‘미니멀리즘’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웰빙, 소확행, 미니멀리즘은 하강 이미지며 잘 사는 삶의 기준이 점차 낮아졌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추억팔이’ 콘텐츠가 유행하는 현상 역시 고착화된 경제난에 맞닥뜨린 현대인들이 진정한 웰빙의 시대를 그리워는 세태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현상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현상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사회를 구성하는 미시적 개인들의 특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향수병 유행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종국에는 사회 비판으로 나아갔다면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란, 과거를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가도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아무 일 도 하지 않을 때 망상에 빠지거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머릿속으로 옛날 일을 되새김질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추억에 젖어 사는 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지는 않다. 미래는 연기처럼 불확실한 것이고 1초도 체감하기 전에 현재는 곧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과거의 추억뿐이라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쌓아온 기억의 총체이다. (96p)

라고 말하는 『잠옷을 입으렴』은 누군가는 과거를 헤매며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는 소설이다.

<잠옷을 입으렴> 표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만약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 있었더라면

 우리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시기는 대체로 유년 시절을 뜻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에도 조그만 머리를 끙끙 앓게 했던 고민거리들이 있었겠지만 그때의 고민은 지금의 고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만도 못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의 고민은 비누 거품처럼 가벼운 것들이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만 해도 금방 날아가 버리곤 했다. 성인이 돼서 마주하는 고민들은 장기전에 들어간다. 그 고민들 중에는 고질적인, 평생을 걸쳐 씨름해야 할 고민도 있다. 『잠옷을 입으렴』의 둘녕이는 그녀의 불편한 한쪽 다리만큼이나 고질적인 삶의 고민들에 일찍이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어느날 자식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와 하나 뿐인 딸을 외가에 맡겨놓고 찾으러 오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고민이었다. 외할머니와 이모 내 , 막내이모와 막내삼촌, 동갑 사촌까지 있는 외가에 얹혀살게 되면서 둘녕이는 성장기 내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둘녕의 고민은 동갑내기 사촌 수안과 함께 있는 순간에는 잠시 모습을 감춘다. 둘녕의 어린 시절은 친자식과 조카를 대하는 이모 내외의 악의 없는 차별로 비롯될 만한 구김살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채워지기보다는 수안과 함께 나눴던 따뜻한 추억으로 가득하다.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단어 맞추기 놀이, 종이 인형 놀이, 동화책 줄거리에서 파생된 상황극들…. 둘녕은 서른 여덟 살이 되었지만 수안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은 여전히 그녀를 기쁘게도, 아프게도 만든다.

 나는 어떤 이들은 한 순간으로 평생을 산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그들의 현재는 과거의 반동이 된다. 특정한 물건을 만지면 봉인돼 있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추억을 조금이라도 상기시키는 구석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는 못해서 어떤 사람들의 삶은 미래를 개척할 기회는 잡지 못하고 과거의 잔상만을 쫓아 살게 된다. 소설가들은 예로부터 이 점을 잘 알았던 것 같다.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첫사랑』, 프레드 울만 작가의 『동급생』, 『잠옷을 입으렴』은 이야기가 회상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세 작품들은 사람이 유독 그리워하고 자주 떠올리는 추억들에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아쉬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 또한 잘 아는 소설들이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만약 내가 그때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첫사랑』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는 주인공이 소년에 대한 마음을 더 일찍 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동급생』을 읽을 때는 친구에게 얽힌 진실을 주인공이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떠오른다. 『소나기』에서 소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소년의 추억은 어떻게 달리 적혔을까 가정해 보는 것처럼 ‘만약 이때 이랬더라면….’하는 가정들이 속출하는 추억일수록 우리는 그 추억에 집요해지는 구석이 있다.

 

종말은 모습을 천천히 내비친다  

 『잠옷을 입으렴』을 처음 읽었을 때 둘녕의 이야기가 아쉬움 없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회상이었으면 그녀의 현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생각해 본 적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피 엔딩을 선호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새드 엔딩일 때 더 여운이 남는 법이다. 책을 세 번째 읽었을 때야 나는 『잠옷을 입으렴』이 좋은 시절에는 항상 끝이 있음을 말해주는 책이란 걸 알았다. 『잠옷을 입으렴』은 따뜻한 문장으로 둘녕과 수안의 어린 시절을 감싸지만 그 따뜻함에는 불안한 종말의 복선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새들은 멀리 우리가 모르는 이방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겨울까지가 가장 평화로웠습니다. (106p)

 좋았던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눈 뜨고 일어나면 키가 몇 센티미터씩 자라있는 걸 경험하듯 평화로웠던 날들은 어제의 나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라나는 키를 멈출 방법이 없는 것처럼 좋은 시절에 이는 균열을 막을 방도는 없다. 변화는 자의에 맡겨지는 일이 아니라 타의에 걸린 문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둘녕이란 사람은 그대로이더라도 둘녕을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버릴 때 호시절은 막을 내린다.

 『소나기』 속 소녀의 감기와 불길함을 상징하는 보라색은 결말에 대한 복선으로 일컬어진다. 수안 또한 어려서부터 자주 병치레를 겪는다. 수안은 유독 죽음과 밀접한 인물이다. 갓 태어난 동생을 보고서는 “이 아기도 언젠가는 늙고 죽게 된다니…. (155p)”라 말하며 혀를 차고 수안의 첫사랑이었던 같은 반 남자아이는 캠프파이어를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는다. 시체를 보고 겁을 먹는 둘녕과 다르게 수안은 그 시체를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둘녕이와 수안의 시간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치밀한 복선과 상징들로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결말이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포플러 신작로, 클로버 문고, 사이다병, 툇마루 라는 낯선 장면이 주는 따뜻함에 빠져 그 따뜻함이 조용히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알지 못했다. 그건 소설 속 둘녕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영원히 간직하고픈 시절을 깨뜨리는 금들은 아무도 모르게 야금야금 생겨난다. 그것을 진작 눈치챘더라면 한 시절을 더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떠나가버린 과거와 상관없이 현재를 파고든다. 수안이 말하길, 포플러의 꽃말은 “슬픔과 비탄(151p)”이다.

 

추억은 현재진행형

 패배주의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를 말이지만 나는 가끔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는 말에서 위안을 얻곤 한다. 운명론은 믿지 않지만 모든 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흘러가는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가 내 쪽에서 소홀해지지 않아도 상대방 쪽에서 먼저 소홀해지거나 상황이 윤허하지 않아 퇴락해 가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배려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따라 행복한 오늘은 행복했던 그때가 되어버린다.

 다시 향수병 콘텐츠를 둘러싼 의견들로 돌아가 보자. 비판적인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우리는 당면한 일에 집중해야 하고 미래를 개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물론 과거에 저당 잡혀 사는 삶은 안타까운 구석이 많은 삶이다.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인생의 좋은 때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데 그들은 그 가능성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옷을 입으렴』은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102p)”란 말이 더 어울리는 소설이다.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남겨지기를 택한 자의 역할은 때때로 남은 추억을 상대방 몫까지 간직하는 일이 된다. 우리에게 아름다웠던 그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 영원한 진리로 남는다. 시간에 의해 모든 게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추억을 되뇌이는 일은, 어쩌면 삶이 죽음으로 부식돼 가는 속도를 늦추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너와 포플러 신작로와 사이다병, 툇마루를 추억하는 일은 그때의 내가 그들을 사랑했던 감정과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감정은 변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일이다. 어떤 이들에게 추억은 현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서 홍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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