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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산: 화폐 대전환

경제

by 대서 2020. 7. 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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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지갑

두꺼운 지갑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88.5%(885)의 소비자가 한국은행의 조사(2018.10~2018.12)에서 일상에서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하는 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61.3%(613)의 소비자는 현금 없는 사회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간편결제 시스템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말이죠. 그리고 20206, 가맹점인출과 거스름돈 계좌입금이 가능한 모바일현금카드가 어플 형태로 출시되었습니다.

만약 주민등록증까지 디지털 형태로 발급된다면, 주머니 속 지갑이 서랍 구석에 방치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갑이라는 표현은 일상에 여전히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화폐의 저장 공간이 지갑으로 불리기 때문인데요. 디지털 화폐 기술이 상용화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지갑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달라지는 화폐

정부는 지갑의 변화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의 2018년 지폐 제조비용은 1,104억 원에 달했으며 손상 화폐 폐기비용은 4.5조에 가까웠습니다. 코로나에 따른 수출 감소 규모가 4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죠. 이미 지갑의 형태도 변화하는 상황에서 4.6조의 지폐 관련 비용을 계속 감당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현금 없는 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시범 운영 방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CBDC 연구 및 시범사업은 지폐나 동전 등 명목화폐 사용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17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입니다. 2016년 중앙은행(릭스방크)의 조사에서 GDP 대비 현금 사용률이 1.4%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은행 지점 1600곳 중에서 900곳은 현금을 취급하지 않았죠. 이에 2017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지난 2월부터 ‘e-크로나(krona)’를 고립된 환경에서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폐 처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CBDC = 보이지 않는 지폐이죠. 하지만 CBDC의 배경을 바라보면 정부 중심의 재정 정책으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CBDC 연구 계기는 2008년 경제위기였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유럽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민간 은행이 국가에 예치할 돈으로 사람들의 대출을 유도한다면 위험자산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투자실패와 연금 감소를 우려한 시민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집값만 오르고 말았습니다.

유럽은 정책 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간접적 실현으로 판단했습니다. 경제정책이 결국 은행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실행된다는 것이죠. 중앙은행은 민간 은행을 대신하여 개인의 현금 활용에 관여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전자결제 시스템이 성장하고 있을 때였죠. 그렇게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계좌를 통해서만 전자결제에 필요한 화폐가 운영된다면정책의 직접적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 보았죠. 그래서 CBDC는 디지털 지폐뿐만 아니라 계좌 없이 그림이나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일정 권리를 가지는 토큰 형태로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지폐 관련 비용을 없애고 경제위기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처럼 보입니다. 더불어 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을 이용했던 암시장을 차단해서 시장을 보다 도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는 점은 매력적이죠.

하지만 기존 은행 체계 붕괴와 개인의 재산권 침해 논란이 문제점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은행에 예금하던 것의 일부를 국가에 예금한다면 은행의 자금력에 문제가 생기고 금융 체계 전체에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죠. 정보가 부족한 계층의 국민들이 경제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멈춰있는 의식

앞서 연구 중이라 말씀드린 17개국 이외에도 최소 국제결제은행에 가입한 60개국은 CBDC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CBDC의 국가 간 결제 여부가 국제적 논제이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이 2019년 개발 도상국의 통화가치도 반영하는 디지털 화폐로 리브라를 제시했죠. 하지만 EU와 국제결제은행 가입국들은 리브라가 통화 주권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리브라의 기축통화 시도 저지로만 볼 수 있을까요. 기존 기축통화의 권위 유지로 봐야할까요. 추후에 선진국의 CBDC가 디지털 기축통화로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한국은행이 내년에 사회 일부분에 접목하고자 계획하는 것은 단순한 전자화폐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경제면 담당자들이 약간은 등한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 문제는 어떻게든 알아서 해낸다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화폐 도입에 따른 재산권 침해 등 법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까지 얘기할 광장이 필요합니다.

 

 

[대서 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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