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회적 경제 3: DIY 화폐

경제

by 대서 2020. 5. 12. 00:52

본문

 햇살 강력한 5월이지만 소비 전망은 흐립니다. 여전히 코로나 한파의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보복성 소비 흐름에 긴급재난지원금이 더해진다면 소비 열기가 달아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지원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며 열기를 지자체까지 확산시키고자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사용처 제한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기대보다 미지근한 여름을 보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 표  1 =  지방자치 정책브리프 제 79 호에서 제시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현황 ]
[ 그림  1 =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전통시장 경기 현황 ]

 전통시장 사례를 살펴보면 지역 화폐에 대한 의문이 충분히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역 화폐로 가장 큰 혜택을 얻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전통시장의 경기는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2019년에는 177개 지자체에서 2조원 규모로 급격히 발행을 늘렸지만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역사랑상품권의 방향성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가 지자체의 가맹점에서만 소비하여 소상공인을 돕고, 환급을 통해 지속적인 이용을 한다는 논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프랜차이즈에서 사용되지 못하면서 도시 사람들의 사용 거부로 이어진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맹점 역시 감소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방향성이 퇴색된 것이죠.

 물론 지금처럼 지역 화폐가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상황이라면 상품권의 의미가 살아나며 경제구조가 급격히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급격하고 강제적인 변화가 문제없이 일상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개인 생활의 불편함을 또다시 시장 살리는 착한 소비라는 도덕으로 덮어씌우는 행정이 옳은 것일까요.

 


[ 그림  2 = Irena Gajic 의 작품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점으로 남아있는 구성원을 모으는 작업 .]

 그래서 이번에도 지역 화폐가 어떻게 하면 도덕적 관점을 벗어나 합리적인 효용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 핵심이 공동체의 특성을 뚜렷이 반영하는 생산체계에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에 속한 생산자 각자의 특성이 드러나는 제품이 유통된다면 지역 화폐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지역 화폐 또한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더 좁은 범위의 공동체에서 관리될 때 가치가 높아질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공동체 중심의 사업체계는 하향식 재정 구조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재정에 투자하는 협동조합의 형태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같은 목적을 가진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만드는 사업체입니다. 우유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뭉쳐 수입을 얻을 수도 있고, 공동구매를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얻을 수도 있죠. 제가 우리의 경제라고 지칭한 사회적 경제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각 구성원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투자하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단체가 필요하니까요.

 지역 화폐 기반의 협동조합은 1997년 외환위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지역 스스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화폐를 직접 발행하는 방식이 제안되었던 것인데요. 국가 지원으로 발행된 지역사랑상품권보다 독립된 화폐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와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역 결속력이 감소하며 많은 지역 화폐 협동조합이 쇠퇴했지만, 대전의 지역교환 거래체계 한밭레츠는 여전히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표  2 =  한밭레츠 운영방식 / 자체적으로 두루라는 화폐를 소비하며 노동이나 물품을 거래한다 .]
[ 그림  3 =  한밭레츠 총회자료가 제시한 연간 품앗이 거래금액 ]

 공동체 한밭레츠에 속한 400여 명은 현금과 함께 두루라는 화폐를 통해서 재화 및 서비스를 교환하며 공동체를 꾸리고 있습니다. 두루는 관리국에서 자체적으로 계좌 형식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꼭 당사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두루를 갚거나 빌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한밭레츠의 규모는 670가구에 불과하며, 30대 이하 구성원은 91명에 불과합니다. 품앗이의 특성상 넓은 지역으로 뻗어 나갈 수 없는 한계 때문이죠. 이렇게 한밭레츠의 두루는 공동체 스스로 발행한 화폐의 가능성과 공동체 범위의 한계도 제시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슈퍼마켓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것을 제안합니다. 지역 화폐를 통해서만 로컬푸드 활용 생필품을 유통 및 판매하는 상황을 가정하겠습니다. 생산 참여자들의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지역 화폐를 통해서 급여를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슈퍼마켓들이 협동조합으로 관리된다면 지역의 크고 작은 마트가 일종의 프랜차이즈로 운영되어 지역 화폐 사용 범위가 넓어지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필품이 지역 화폐를 통해서 소비될 수 있게 된다면 화폐 가치를 공동체 나름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민 상담을 통해 5000원 상당의 지역 화폐를 받거나, 버스킹에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 화폐를 부여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죠. 이런 시도는 기존에 굳어져 있던 노동의 틀을 깨어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일에 관심을 두도록 만들 것입니다. 조금 허무맹랑한 제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제가 서로의 신용을 통해서 유지된다는 틀에서 충분히 논의할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모두가 이해하는 재정 정책이 제시될 수 있을까요. 부득이하게 일부 지자체는 원하는 예산을 얻지 못하게 되겠죠. 우리가 그 일부에 속한다면 의사와 관계없이 재정 정책의 여파를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각자 버틸 힘이 없다면 손을 내밀어 맞잡아야 합니다. 서로를 믿으며 같은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대서 김세현 / yjyj0000@naver.com]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