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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키운 성장 소설 -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

특별 수록

by 대서 2020. 6. 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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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정한 성장 소설은 독자도 함께 성장하는 소설이다.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들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마음의 키가 한 뼘 더 자라있는 걸 경험하게 하는 소설이 성장소설이다.

성장 소설의 대표격인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p. 32

『호밀밭의 파수꾼』은 작가의 말처럼 나로 하여금 당장 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하고 싶게 만든 책이다. 그건 상대방의 글이 내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에 발생한 충동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당신의 책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은 아쉽게도 흔하지 않다.

『어린왕자』의 문장을 인용한다면, 도서관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책이 어딘가 숨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많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좋은 책의 가치는 두고두고 회자되어야 한다.

흔히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든 책이 모든 사람에게 지식의 보고가 되는 건 아니다. 이 연재문에서 소개될 책은 내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 책들이다. 극도로 주관적인, 어쩌면 편애로 선정되었다 보아도 무방한, 나와 밀접한 책들이 당신의 마음에도 양식이 됐다면 혹은 될 예정이라면 이 보다 감격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어린 왕자 만나기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 p. 108

읽어보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다. 내게는 『어린 왕자』가 그랬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소행성 B612, 생택쥐페리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 삽화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명문장 역시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다. 내 마음속에서 『어린 왕자』는 어릴 적 한번 읽어본 것 같지만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소설, 그러나 텔레비전이나 다 른 소설을 통해서 이미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 책에 지나지 않았다.

열린책들 『어린 왕자』 리커버 특별판 표지

아마 이번에 『어린 왕자』가 새롭게 리커버된 모습으로 출간됐다는 소식만 아니었다면 내가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어린 왕자』는 다른 책들처럼 직사각형 모양도 아니며 표지에 금발 머리를 한 『어린 왕자』가 그려져 있지도 않다. 표지에는 장미가 그려져 있으며 책은 『어린 왕자』가 장미를 위해 씌워준 유리 덮개 모양을 하고 있다. 참신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소장욕을 불러일으켰다. 나와 어린 왕자의 만남은 충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이었지만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내 충동구매를 일으킨 표지 디자인이 책 내용과 굉장히 어울리는 디자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아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는 야수가 필사적으로 장미꽃을 지키려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에게 어찌나 소중한 존재였던지 장미꽃은 유리 덮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장미꽃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장미꽃은 호랑이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바람이 싫다는 이유로 어린 왕자에게 유리 덮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어린 왕자는 오만한 장미꽃을 사랑해 꽃의 요구란 요구는 다 들어주지만 이내 곧 불행해지고 만다.

장미꽃을 떠난 이후 어린 왕자의 행적은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만의 꽃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구에 불시착하기 전 어린 왕자가 차례로 방문했던 행성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했다. 어린 왕자는 왕, 허영쟁이, 사업가, 술꾼, 지리학자를 만나지만 그들은 모두 장미꽃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지구에서 만난 여우와 뱀도 어린 왕자에게 장미꽃이 소중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등장한다. 이들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데 이는 여우와 뱀이 단지 책의 교훈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우는 수천 송이의 장미보다 어린 왕자가 정성을 쏟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B612의 장미 한 송이가 더 소중함을 알려준다. 이는 여우가 사는 세상의 진리와도 같다. 남들의 눈에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존재더라도 인연을 맺는 순간부터 그 평범한 존재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성장하게 된다. 소행성의 장미를 빛나게 해주는 건 어린 왕자와의 인연이다.

동심을 가진 어른이자 책의 서술자이기도 한 조종사는 어린 왕자가 깨달은 바를 전수받는다. 그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역시 특별하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직접 길어 올린 물이기 때문이다.

그 물은 보통 음료수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 물은, 별빛을 받고 걸어온 발걸음과 도르래의 노래와 내 팔의 노력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선물처럼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 p. 112

가장 중요한 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린 왕자는 뱀의 도움을 받아 고향 별로 돌아간다.

 

누군가의 장미꽃

독자는 조종사의 6년 전 회고를 읽는다. 그가 어린 왕자를 떠나보낸 시점에서 6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다. 여우가 밀밭을 보며 어린 왕자의 금발 머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조종사는 하늘에 떠오른 별을 보면서 어린 왕자가 살고 있을 소행성을 생각한다. 그리고 별안간 어린 왕자와 장미가 잘 지내는지, 아니면 양이 장미를 먹어버리진 않았는지 상상하면서 즐거움과 걱정을 느낀다.

어린 왕자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히 동심에 집착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어린 왕자가 뱀에게 물려 자신의 별로 돌아갔듯 조종사 역시 어린 왕자와의 이별을 겪고 현실로 돌아간다. 아마 그는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는 동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어린 왕자가 떠나는 모습은 사라지는 동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생택쥐페리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이 어른들을 위한 도서라면 『어린 왕자』는 동심을 잃어버린 세상을 만난 어른에게 삶의 지침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그리고 생택쥐페리는 자신만의 장미꽃을 찾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장미꽃을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어린 왕자』의 표지에서 장미꽃이 주역이 되는 일은 마땅하다.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 p. 101

 

 

[대서 홍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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