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친구들이 속속 군대로 들어가면서, 어느덧 입대일이 다가올 즈음이었다. 코로나 19가 점점 잦아들고 5월 6일자에 생활 방역으로 전환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조금씩 약속을 잡고 있었다. 박 군도 그 중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박 군은 2019년 10월에 입대한 군인이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한 번 밖에 휴가를 나오지 못했던 박 군은 못썼던 휴가를 길게 써서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다 만나고 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부대 내에서 휴가 일정을 관리하는지 약속날짜를 바꾸며 귀찮아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휴가 나올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은 듯했다.
불행히도 며칠 뒤에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났다. 휴가 나온 군 간부 두 명이 연루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그날도 박 군에게는 약속 날짜를 바꾸자는 연락이 왔다.
"나올 수 있나, 휴가 잘리는 거 아님?"
"아직 모르지, 근데 당장 내일 아침에 지침 떨어지면 못 나간다."
휴가 나갔던 사람이 강제복귀하고 있고 휴가가 잘릴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박 군은 아직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군 장병들이 오랫동안 못 나가고 있었을 텐데, 가장 빨리 나간 군 간부가 코로나에 걸려왔다는 것이 적지 않은 배신감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본인이랑은 거리가 먼 소대라지만 ‘군인이 휴가 나갔다가 코로나에 걸려왔다’ 는 문구가 굉장히 자극적이었기 때문에 휴가가 다시 멈출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지 말라고 소망하는 방법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박 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군은 당장 내일 아침에 지침이 내려와도 이상할 게 없으니 일 있으면 연락 하겠다고 말했지만, 박 군은 이틀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박 군에게 연락이 온 건 약속 바로 전 날 저녁이었다. 몸살이 났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만나서 더 얘기하기로 했다.
전염병 기간에 날씨가 좋다는 건 잔혹한 일인 것 같다. 평소 같았다면 집에 있기에는 아쉬운 날씨일 텐데, 나들이 가기 좋은 전염병 기간은 상충되는 말이지 않은가. 햇볕이 내리쬐는 따스한 날에 두꺼운 마스크를 끼는 것도 점점 곤혹스러워지는 나날이었다.
다들 나 같은 사람들인지 버스와 지하철에는 붐비지 않을 만큼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는 전염병 예방 차원으로 플랫폼 바닥에 색색의 스티커를 붙여둔 모양이었다. 어떤 스티커는 노인전용 칸을 안내해서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 승객을 보호하려 했다. 지하철 내부에도 한 칸씩 띄워 앉기를 안내하는 스티커를 붙여 승객들이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환승역인 명덕역에서는 비교적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게 오랜만이라 사회적 거리 두기 때에도 사람이 많았는지, 아니면 생활방역으로 전환되면서 많아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장갑을 끼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거나 남녀노소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 군을 만나 3 층짜리 카페에 가니 노트북이나 책 따위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사이버 강의를 듣는 대학생이나 자격증 준비를 하는 취업 준비생처럼 보였다. 각자 음료수나 먹거리를 먹으며 학업의 고단함을 달래는 모양이었다. 박 군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내게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카페나 식당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무언가를 먹을 수는 없으니 벗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군은 수긍하면서도 걱정되는지 아메리카노를 먹는 잠깐씩을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끼고 얘기했다.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박 군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빨리 간다면서 좋아라 했다. 안에서 한 시간을 떼우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바깥에서는 커피 한 잔만 먹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간다고 좋아하면서도 아쉬워했다.
"부대 안에서는 어딜 봐도 주위가 다 흑백처럼 보인다. 근데 여기는 컬러가 생생해."
환절기 감기는 살면서 걸려본 적이 없다던 박 군은 이번에 열이 38도가 넘도록 올랐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해열제 받으러 갔다가 정신을 차리니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속한 일처리에 감탄하고 있는 내게 박 군은 군대에서 아프지 말라고 당부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고열에 아무도 없이 혼자 누워 몹시 쓸쓸했는데, 후에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격리되어 있는 동안에는 한 방에 4명이 같이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방에 네 명씩?"
"네 명‘만’ 희생하면 된다잖아."
달콤한 쿠키 앤 크림 셰이크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다행히 같은 방에 있던 4명은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고, 박 군은 8박 9일로 길게 쓰려던 휴가가 반 토막 나 4박 5일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박 군은 그것 말고도 주로 나오니까 좋다는 바깥 예찬이나 힘들었던 일들을 조금씩 얘기했다. 혼란스러운 시국이지만 군부대에서 나와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휴대폰이 있어 이전보다 바깥사정을 살필 수 있기는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카페 입구에 이어 현금을 인출하러 간 atm기기 앞에 놓인 손 소독제와 밖에서는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추가 확진자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는 말을 했다.
반면에 나는 어느 샌가 이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조금 놀랐다. 국내 첫 확진자가 2020년 2월 19일에 나왔으니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생활 방역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만큼 씁쓸하기도 했다.
이후 박 군과는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처럼 가볍게 한 잔 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안전을 위해 무리하지 않았다. 멀쩡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대서 유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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