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정훈교 시인과의 만남
요즘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꿈을 이룰 기반이 많이 마련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문학도 그런 추세를 따라가는 듯하다. 고향에 남아 지역의 문학을 한다는 사람을 찾기는 매우 힘든 현실이다.
시인보호구역은 문화 예술 공연, 문예지 출판, 교육 프로그램 진행 등을 하는 문화 공간인데, 그 설립 취지는 다음과 같다.
신진 예술가를 발굴, 지원하고, 예술가의 꿈을 보호한다. 또, 작가를 양성하여 지역의 문학이 발전하고 자립할 수 있게 힘쓰고자 한다. 지역 문화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민과 예술인, 독자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올해부터는 시인보호구역이 두 곳에서 문을 연다. 첫 번째 장소는 대구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범어아트스트리트 내 공간이다. 정훈교 대표는 5월 두 번째 시인보호구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기존의 역할을 하면서, 카페를 함께 운영하며 모두에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지역 예술가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터를 닦아온 시인보호구역 대표 정훈교 시인을 새로 옮긴 대구 북구 산격동 공간에서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시인보호구역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먼저 지역에 있는 청년예술가(뮤지션, 화가, 문학청년 등)가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대관료 안 받고 무대를 빌려주거나 갤러리 전시를 열어주기도 했고요. 대부분 창작 활동을 하느라 형편이 넉넉지 못했습니다. 또 능력있는 청년들을 위해 같이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축제 운영에 참여시키기도 하고, 문화예술잡지 만들 때 편집위원으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같이 하면서, 일을 배우는 것은 물론 본인의 커리어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특히 문학청년들에게는 조언을 통해 책이나 강의에서 배울 수 없었던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줬습니다. 또 작품 첨삭도 무료로 해주기도 했고요. 둘째로는 인적 네트워크. 예를 들어서 존경하는 시인이 멀리 거주하면 만나지는 못하겠죠. 그런데 ‘작가와의 만남’이나 ‘문예지’ 활동 등을 통해 서울과 대구, 혹은 다른 지역 예술가들과 일찍부터 교류할 수도 있는 것이죠. 평상시에는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인데, 이렇게 하면 직접 전화하고 인터뷰할 수도 있고. 그러면 또 배울 수 있는 것도 생길 수 있죠.
그리고 자기가 가진 분야 외적으로도 배울 수 있게 돼요. 멀티 플레이어라고 하죠. 글 쓰는 사람이 글이 느는 건 당연하고, 행사를 기획하거나 문예지 디자인 회의를 하거나 하면서 다양한 방면으로 실력이 길러지는 거죠. 또 작년 4월부터는 <라디오 시인보호구역>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것들을 배우고 교류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Q. 다양한 플랫폼에 도전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작은 콘서트를 기획하거나 플리마켓을 열거나 할 때, 시인보호구역과 무관한 엉뚱한 일을 한다는 목소리도 많아요. 그렇지만 처음 생각했던 그 취지에서는 전혀 바뀐 게 없어요. 우리끼리 만족하고 넘어가면 우리끼리만의 잔치가 되겠지만,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탄탄한 위치에 있으면 활동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잖아요. 결국 홍보 역할을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시인보호구역을 알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Q. 시인 보호 구역을 시작하게 된 마음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타까웠어요, 지역 예술 상황이. 시스템과 자본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다들 서울로 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지역 소재 문예지로 등단했는데, 2010년도 등단 당시에 막연히 신춘문예보다는 지역일지라도 시대를 올곧게 살아낸 지역문예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철학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2012년에 김광석 거리에서 시인보호구역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회사 마치고 저녁에 한 번씩 다니면서 찾아오시는 분들과 얘기 나누는 게 전부였어요. 거기서 활동하면서 다른 예술분야의 사정도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음악 하시는 분, 미술하시는 분, 연극하시는 분 등등 실력은 있는데 발굴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들 서울로 가는 게 안타까웠죠. 이대로 가면은 지역 예술가는 아예 없어지겠다,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회사 생활도 해봤고 아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하려니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분명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왜냐면 이게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니까요. 알고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설립취지를 분명하게 적어 두었습니다. 흔들릴 때 그걸 다시 읽으면서 초심을 찾곤 해요. 왜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했는지.
Q. 지역 문학은 왜 지켜져야 하나요? 서울과 지역이 무엇이 다르길래 차이가 나는 걸까요?
일단 문화예술 시설이 서울에 제일 많죠. 단순이 건물이 많다는 것에 더하여 자본이 모두 그쪽으로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죠. 서울 중심으로 하게 되니까, 다른 지역은 관심이 없어지면서 소외되게 돼요, 소외되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대한민국의 문학은 서울, 광주, 대구, 각 지역의 문학이 다 합쳐서 전체의 문학을 이룬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학을 얘기하자면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서울에 있어요. 지역의 문학가가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니 누군가가 막지는 못하더라도 늦추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속도가 더 빨라지고 다양성이 덜 보장되겠죠.
또 서울 문학가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되죠. 행사도 자주 열리니까. 우리는 멀리 있으니 일부러 초대받을 일도 거의 없고. 그러다 보면 소통 자체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작년 10월 말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이런 비등단자 배려를 위한 첫 번째 ‘좌담회’를 갖고자 연락이 왔어요. 온라인 공유경제 플랫폼을 만들자는 등의 논의를 하는 자리였어요. 예닐곱 명의 초청자가 회의를 하는데, 보니까 저만 지역 사람이고 다 서울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가지 않았다면 지역 의견은 흔히 말하는 패씽이 되어 논의조차 되지 않았겠죠.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요.
Q. 힘들었던 것은?
시인보호구역은 ‘내가 직접하자.’는 주의예요. 출판사업도 직접 한단 말이죠. 다른 거대 자본 등의 큰 도움 없이. 사실은 이런 부분이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실제로는 수익이 대부분 없어요. 제로에 가깝죠. 그래서 그간 회사 다니면서 모아뒀던 적금, 퇴직금 깨고 그 이후에는 여러 개의 보험을 해지해서 운영해왔습니다. 물론 대출도 있고요. 이제는 대출마저 안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거대한 벽과 싸우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의 시대는 돈이 곧 생명인 것 같아요. 원초적으로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보니 늘 가뭄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여러 번 옮겨야만 했어요. 김광석거리에선 쫓겨나다시피 했고요. 이렇게 몇 년 반복하니까 돈이 점점 없어져서 초기 공간이 문을 닫은 거예요. 속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쟤 돈 많다더라.’ 이렇게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실은 전혀 아니라는 거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대구시나 지차제에서 후원, 지원 해주는 거 아니겠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쪽에서 봤을 때는, 공식적으로도 그렇고 결국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박근혜 정부 때는 블랙리스트였어요. 대구문화재단에도 이름이 올라가 블랙리스트였어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죠. 갈 곳도 없고, 지원은 더 못 받고.
회사를 그만 둘 때도 많이 고민했죠. 분명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수익이 되는 활동이 아니니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수시로 설립취지를 되새기곤 합니다.
Q. 지금 시인보호구역의 상황을 알려 주신다면?
결국 우리는 돈 안 되는 것들에 전력하고 있는 거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돈을 벌 순 없겠지만 대신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몇 년간 활동을 쭉 해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인보호구역을 알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이 있으시더라고요. 독립 문학예술잡지를 함께 만드시는 그룹이 있고요. <라디오 시인보호구역>을 함께 만드는 그룹이 있습니다. 또 시와 소설을 배우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런 직접적인 활동 외에도 2020년 올해 초, 시인보호구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의 모임인 “문화살롱”이 결성되어 100여 명이 함께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인보호구역은 열정 있는 분들에게 늘 열려 있습니다.
사람이 남는다는 말을 깨달아요. 혼자서 자금을 마련해보겠다고 애쓸 때 정기 후원으로 마음을 보태주는 분도 계시고, 또 문학적으로 정훈교 시인을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행사를 진행하거나 이사할 때 등등 손을 보태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시인보호구역이 있구나, 늘 깨달아요. 절대로 혼자 할 수는 없는 일들이죠. 비록 돈은 전혀 못 벌었지만 사람, 가장 소중한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거죠. 돈도 벌고, 사람, 권력도 벌고 하면 당연히 좋지만, 굳이 하나 선택하자면 사람을 보고 인생을 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Q. 단순히 작가가 서울에 있다고 해서 서울의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죠? 지역 문학의 위기가 어떤 형태인가요?
원래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백석이라는 시인이, 원래 북한 사람이에요. 함경도 쪽에서 그 시대의 정서, 풍습, 방언, 이런 것을 가지고 시를 썼단 말이에요. 그런 방언과 정서를 사용하면 문학적으로 풍부해져요. 그런데 비슷한 교육과 환경에 있으면서 표준화되니까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죠. 표준화가 되면 다양성이 줄고 소수는 죽어요. 소수자, 혹은 소수의 의견 이런 것이 다 힘을 못 발휘하죠. 다양성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을 인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 주류만 따라가려고 하고, 거기에 흡수되고 싶어 하죠. 또 실제로는 흡수되더라고 내부에서는 또 밀립니다. 특정 지역에 쏠리는 문화적 집중을 문화분권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문학의 위기가 그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싶어요.
Q. 이건 전체적인 문학 경향에 관한 질문인데요. 요즘은 SNS에서 작품을 공유하고, 인기를 얻고, 책을 출판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2000년대 전까지는 그런 방식은 없었어요. 하지만 컴퓨터, 휴대전화가 발달하면서 누구나 쉽게 적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이후 다양한 문화적 운동과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 증대로 문학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어요. 그 결과도 폭넓은 독자층이 형성되기도 했고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향유하고 즐기게 되면서 문학의 저변을 확대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늘 고민되는 지점이, 너무 대중적이고 보편화되면 필연적으로 수준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애초 문학의 염결성과 같은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사람이 줄 수 있거든요.
자극적으로 말하면 작품 수준을 떠나 단순히 연예인처럼 인지도가 높아, 원고료나 강연료 등이 책정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문학의 목적이 상업성에 있으면, 다들 인기 얻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한단 말이죠. 약간 비약적일 수 있겠지만, 이런 식을 가면 종국에는 순수문학을 하는 분이 자꾸 줄어들게 돼요. 그러면 결국에는 한국 문학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벨문학상은 상상하기 더 어려워질 것 같기도 하고요.
동시에 순수 문학가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매스미디어가 발달되기 전에는 종이책으로만 공유가 됐는데, 지금도 이런 방식만 고집하면 뒤로 밀려나기 십상입니다. 지금 세대에서는 순수 문학을 하더라도, 종이책 외데 다른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자기들만의 리그가 되면 안 되고요.
Q. 시인보호구역에 대한 마음, 그리고 한 말씀 부탁드려요.
공간이든 사람이든 늙지 말아야겠다, 여기서 늙는다는 것은 새로움입니다. 젊은 분들은 새로운 정보도 비교적 빨리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러니깐 또한 적응과 변화도 빨라요. 그런데 생각이 굳어지면 잘 안 바뀌는 거죠.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은 늙지 않는, 그런 사람이요.
시인보호구역에서는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해요. 마임으로, 마술로, 노래로, 전시로 다양한 형태로 문학을 표현해보려고 해요.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봅니다. 더나가 문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도, 넘어와서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요.
늘 노력하는 시인보호구역이 되겠습니다. 늙지 않는 시인보호구역이 되겠습니다.
[대서 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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