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비단 바이러스 감염 뿐만은 아닐 것이다. 확진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코로나 확산 초반부터 현재까지 뜨거운 감자이다. 확진자 수가 한 자리였을 때의 신상 정보 유출부터 최근 감염 경로 공개로 인한 성소수자 아웃팅 문제까지, 코로나가 퍼져나갈수록 감염이라는 일차원적 문제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좀 더 복합적인 문제들이 우리 앞에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염 확산 예방과 인권 보호 중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완벽한 타인인 우리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재작년에 개봉한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 각자의 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게임은 바로 저녁을 먹는 동안 모두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 놓은 후, 연락이 오면 그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저녁 식사 자리는 엉망이 되고, 그들은 이런 게임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비밀은 존재하며 그것을 굳이 들추지 않는 편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당시에 영화를 본 이들 대부분은 그 메시지에 공감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현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면 어떨까? 영화를 보는 우리는 등장인물에게 이입하며 그들의 감정을 대신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영화가 끝나면 다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제3자이자 관전자, 즉 ‘완벽한 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고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를 절대적 악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므로 용인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을 지킬 의무가 있다. 각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피해는 다수를 위해 감내되어야 할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확진자 발생 안내는 다수를 위해 공표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개인적인 신상 정보는 바이러스 감염과는 거리가 먼 정보이다. 확진자 동선 발표 또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들이 방문한 장소에 대해 가십거리를 만드는 것은 그저 자극만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게 되면서 우리는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와 비밀을 알 권리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그에게도, 당신에게도 독이 되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게임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게 된 주인공들처럼.
[대서 장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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