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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수록

by 대서 2020. 4.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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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쌀쌀하게도 부는 날이었다. 전 날까지만 해도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쳤는데, 오늘은 칼바람이 살을 때리고 있었다.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한 A군이 조금 늦어 뒤늦게 버스를 탔다. 친구 B군의 입대를 배웅하기 위해 병무청으로 가는 날이었다. 대구 입영자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2주간 격리 대상이었다. 병무청에 모여 단체버스를 탈 친구를 바래다 줄 마음에 마스크를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몇 있는 승객도 전염 예방을 위해 자리를 멀찍이 띄우고 앉아밌었다. A군과 나는 자리를 잡고 병무청으로 가는 1시간 동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달 전에 휴점했던 아르바이트 매장이 아직도 열지 못했다거나, 학교의 사이버 강의로 받은 과제가 허무맹랑하다거나, 최근에 누구도 입대를 했다는 최근의 이야기들이었다. 창밖믜 길거리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 후보의 현수막이 오히려 사람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인근 구경을 하며 올라온 병무청 근처에는 친구 B군과 어머님, 그리고 그의 남동생이 있었다. B군이 쓴 모자 밑에 가지런히 정돈된 까까머리가 있었다.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머쓱해하는 B군의 표정이 우스우면서도 눈물겨웠다. 나 역시 58일 뒤면 겪을 일이었다. 맘놓고 쉬이 웃을 수는 없었다.

  사관후보생인 A군은 B군의 등에 매인 가방을 보고 웃었다. 뭘 그렇게 싸들고 왔냐고 했다. 가방에는 소독 물티슈, 샴푸, 바디워시, 폼클렌징, 책 따위가 있었다. B군은 어제 저녁에 어머님과 같이 준비한 것이라며 혹시 몰라 준비해왔다고 했다. 찾아보아도 얘기하는 사람들마다 소지품 얘기가 다 달랐다며 B군은 머쓱해했다.

 병무청 근처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땅히 먹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전염병의 여파 때문인지 열린 가게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병무청 근처에 형성된 작은 상가도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아 선택의 폭이 좁았다. 다행히 작은 칼국수집이 문을 열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 안에는 입영자로 보이는 남자 넷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먹는 중이라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조용했다.
  칼국수를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B군이 입을 열었다. B군은 여태껏 본인이 입대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누우니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단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라고, 그러다가 바로 자서 개운하게 일어났다고 했다. B군은 웃으면서 오늘보다는 내일 아침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눈을 뜬 천장은 평소와 다른 모습일 테니, 어떤 기분이 들지 쉬이 예상하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일은 두려움으로 찾아온다.
  더불어 B군은 5주동안 휴대폰과 떨어져 있을 예정이었다. 격리 기간인 2주가 포함된 시간이다. 버스로 타 사단에 모여 2주 동안 격리를 하고 이상이 없다면 배정받은 훈련소로 보내져 훈련을 받게 된다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입대일이 앞당겨진 사람도 있었다. 그 주에 입대하는 입영자들을 버스로 한꺼번에 모아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B군의 경우는 입대일이 하루 앞당겨진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B군은 잠시 조용해졌다. 덩달아 우리 역시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건너편에 앉아있던 식탁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도 뒤숭숭한 마음이 들 터였다

 침묵을 깨면서 B군은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삶이 변하는 것보다 서서히 바뀌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안에서 휴대폰은 주지 않지만 쉬게 해준다 들었다고 했다. 격리 기간인 14일도 군복무기간에서 삭감하는 것이니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지만 B군의 앞에 놓인 칼국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을 하거나,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흔들거나, 젓가락을 쥐고 넋을 놓기도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칼국수를 먹다 말고 웃으니 씁쓸해 했다. 그런 모습에 A군은 주변의 군대 이야기를 소소하게 말하며 B군의 긴장을 풀어주는 듯 했다. 앞서 입대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도움이 돼 보였다. 낯선 세계에서 오는 두려움을 정보가 달래주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국수를 다 먹은 후에는 밖으로 나왔다. 11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카페를 갈까 생각했지만, 세종까지 가는 버스가 휴게소를 거치지 않을 예정이었다. 뭔가를 마실 만큼믜 여유는 자칫 생리현상을 자극할 수도 있어 피해야만 했다. 그동안 무얼해야할지 고민하던 차에, 집결지 근처에 있으면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가더라는 A군의 의견으로 일찍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동하는 도중 마음 쉼터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몇몇 입영자들이 거기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군과 B군의 중학교 동창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입대 이야기를 하며 같이 한탄하고 한숨 쉬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병무청 근처에서 서성이다 아는 얼굴이 보이면 인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머리를 깎아두면 알아보기 힘들 것 같기도 했다.

 집결지 앞으로 이동했을 때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모두들 입대자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친구의 입대를 마중 나오는 이성친구들도 있었고, 아버님의 품에 안겨온 반려동물도 있었다. 그 사이로 생각지 못한 인물도 있었는데, 유세를 나온 국회의원 후보였다. 총선을 앞두고 유세 차량과 함께 병무청 앞에 나타났는데, 금방 지나가는 차량인줄 알았지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선거 유세를 시작했다.

 B군은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곧 곁을 떠났다. 어머님과 남동생을 껴안고 우리에게 악수한 후에 떠나갔다. 건물 안까지 가는 동안 4번 정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에 끝까지 손을 흔들었다. B군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볼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도 그러자고 하지 않았지만 당연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의 창이 어두워 밖에서 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B군 역시 어디에 앉았는지 알 수 없었다. A군은 그래서 사람들이 구별 않고 손을 흔드는 거라고 했다. 어디에 앉았을지 모르는 아들과 친구를 향해 사람들은 다른 버스에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멀어져가는 버스를 아쉬운듯 지켜보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가족의 어머님께서 버스를 보내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러면 옆의 아버님께서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냐며 달래어주셨다. 친구들 역시 싱숭생숭한 모양이었다. 잠깐 숙연해지는 동안 유세차량이 빈 소리를 채웠다. 떠나가는 버스 뒤로 현 정권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열렬히 본인의 공약을 토로했다.

 

 

[대서 유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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